십자가로 가까이
4월 7일 큐티 정지운 목사
마태복음 27장 55절
영국에서 열린 비교 종교학 회의에서 세계 각국 전문가들이 기독교 신앙의 독특성을 찾아 토론을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여러 가지 답을 적어놓고 하나씩 지워나갔습니다. 성육신? 신이 인간의 모습으로 현현한 이야기는 타종교에도 있습니다. 부활? 사자의 환생 기사 역시 타종교에 있는 것입니다. 토론이 길어지고 있는데 C.S. 루이스가 방을 잘못 찾아 들어 왔다고 합니다. “토론의 주제가 뭡니까?” 그의 질문에 동료들이 전세계 종교 중 기독교만이 기여할 수 있는 바를 찾는 중이라고 이야기하자 루이스가 다음과 같이 답했습니다. “그거야 쉽죠. 은혜 아닙니까?”
이러한 기독교의 은혜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십자가가 왜 은혜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습니까? 십자가 없이는 은혜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을 수 없는 인간을 향한 무조건적인 긍휼의 은혜를 보여주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심볼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을 때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고백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아니라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님을 지키던 자들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섬기며 갈릴리에서부터 따라온 막달라 마리아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왜 중요할까요? 제자들은 십자가에 가까이 있지 못하고 모두들 도망갔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에 가까이 있었던 사람들을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십자가에서 멀어지면 우리에게서 은혜가 사라집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을 향한 사역보다 내가 주님을 위해서 한 것이 더 크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십자가 없이는 나는 구원 받을 자격이 1도 없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고난주간에만 십자가로 가까이 가는 것이 아니라 매일 우리의 삶 속에서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서 하신 십자가를 날마다 기억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돌아보게 됩니다. 은혜가 메마르면 예수님이 하신 일 때문에 확신을 갖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주님을 위해서 한 일들을 더 위대하게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보다 더 큰 우리의 헌신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에서 멀어질수록 우리는 교만하게 됩니다. 바라기는 오늘 하루 십자가로부터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로 가까이 나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