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 증후군

4월 5일 큐티 정지운 목사

마태복음 27장 11-26절

셰익스피어 비극의 주인공 햄릿은 아버지를 죽인 숙부 클로디어스에게 복수를 고민하면서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란 유명한 대사를 남겼습니다. 이러한 햄릿의 모습처럼 선택지가 둘일 때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심리 상태를 앓고 있는 우유부단한 현대인들의 증세를 햄릿 증후군(Hamlet Syndrome)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햄릿 증후군을 앓고 있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 사람이 누굽니까? 빌라도입니다. 빌라도는 로마가 파송한 유대총독으로 최고 결정자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심문을 하면서 빌라도는 유대인의 왕의 모습을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또한 빌라도는 예수님에게서 어떤 죄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라도는 양심의 소리보다는 대중의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왜 빌라도는 이러한 결정을 내리게 되었을까요? 빌라도의 인생은 철저히 사람이 기준이었기 때문입니다.

여러 가지 해석이 있지만 빌라도는 유대 총독으로 로마 황제로 선출될 1순위였습니다. 따라서 유대인들의 소동이 일어나게 되면 빌라도의 커리어에 흠집이 날 수 있었습니다. 결국 빌라도는 죄 없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하는 유죄판결을 내리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빌라도와 너무나 닮아 있는 죄성을 가진 연약한 우리 인간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십자가의 은혜를 더 깊이 묵상하게 됩니다. 십자가는 죄 없는 예수님께서 죄인의 자리에서 대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입니다.

고난 주간을 보내면서 날마다 빌라도처럼 우리 자신이 좀 더 나은 존재인 것처럼 정당화하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앞에서 햄릿 증후군에 걸린 우리들처럼 우유부단하지 않으셨습니다. 성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바라기는 오늘 하루 십자가 앞에서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며 사느냐 죽느냐가 결정장애에 빠진 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구주와 함께 나 죽었음을 기억하며, 십자가의 길을 당당하게 걸어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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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의 최후는 생각보다 비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