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확신 VS 자기부인

4월 1일 큐티 정지운 목사

마태복음 26장 33-35절

소크라테스는 “내가 아는 것은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이다”라며 지나친 자기 확신에 빠지는 것을 경계했습니다. 자기 확신에 빠진 인간은 자기 자신의 세계 속에 갇혀서 과대망상 속에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자기 확신에 찬 베드로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베드로는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다고 자기 확신에 차서 말했습니다. 이 말에는 다른 제자들이 다 예수님을 부인해도 베드로 자기 자신은 절대로 버리지 않겠다고 다른 사람들과 자신은 다르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할 것이라고 구체적인 시간과 공간과 상황까지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에 베드로는 물러서지 않고 내가 주와 함께 죽을 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다고 선포했습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중요한 것은 자기 확신이 아닌 자기 부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의 삶에 대해서 가르치시면서 지속적으로 자기 부인을 말씀하셨습니다. 왜 이 말씀을 강조했을까요? 자기 부인이 없이는 제자의 삶을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곧 자기 부인이 약해질수록 우리 인간은 세상 속을 살아가면서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부인이 무엇입니까? 모두가 예수님을 부인해도 나는 절대로 부인하지 않겠다는 것은 자기 부인이 아닙니다. 자기부인은 주님의 은혜가 없이는 가룟유다처럼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부인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늘 고백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나는 절대 아니다가 아니라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라고 고백하는 삶 그것이 자기부인입니다.

따라서 바울이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한 것입니다. 선 줄로 알 때가 가장 큰 위기입니다. 베드로는 지나친 자기 확신이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자기 확신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게 했을 뿐입니다. 부디 오늘 우리의 일상속에서 하루하루 자기 부인의 삶이 축적될 때 우리는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 확신은 넘어지지만 자기부인은 여러분의 삶을 일으켜 세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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