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작은 자
3월 30일 큐티 정지운 목사
마태복음 25장 31-46절
한국에 계신 어머니께서는 목회자로 살아가는 아들에게 유언처럼 마음에 꼭 새기며 살라고 가르침을 주시곤 했습니다. 특별히 목회자로서 모든 성도들을 공평하게 대하라는 의미에서 하신 이야기였습니다. 가난한 성도님들의 눈에는 부유한 성도와 눈 맞추며 인사하는 5분이 50분처럼 보일 수 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아마도 어머니께서는 부유한 성도들만을 특별히 대하는 목회자로 오해받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하신 이야기였을 것입니다. 목회자로서 살아가는 시간들이 길어지면서 어머니의 말씀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목회자는 작은 것 하나라도 한 영혼의 성도들에게 시험에 들거나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양과 염소를 철저하게 구분하십니다. 핵심은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사람과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하지 않은 사람으로 나누시는 것입니다. 특별히 주목해야 하는 것은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언제 그 행동을 했는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하지 않은 자들은 도리어 언제 안 했냐고 따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한 사람들은 그들의 행동을 기억하지 못할까요? 묵상을 해보면 아마도 자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이 지극히 작은 자라고 생각하고 일상 속에서 그들을 대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하지 않는 사람이 언제 안 했냐고 따지는 이유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체면을 위해서 의도를 가지고 지극히 작은 자들에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가 건강을 위해서 매일 걸어서 출퇴근하던 어느 날 쓸쓸하게 혼자 앉아 있는 노인을 만났습니다. 그는 노인에게 다정하게 인사를 나누고 말벗이 되어 주었고 그 후 시간이 날 때마다 외로워 보이는 노인을 찾아가 잔디를 깎아주거나, 커피를 마시면서 2년 넘게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출근길에서 노인을 만나지 못했고, 어찌된 일인지 싶어서 노인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알고 보니 노인이 전날 돌아가셨습니다. 장례식장을 찾아가 조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유족이 다가와 회장님께서 당신에게 남긴 유서라며 봉투를 전해줍니다. 봉투를 열어보니 유서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고 합니다. 2년여를 내 집 앞을 지나면서 나의 말벗이 되어주고 때로는 우리 집 뜰의 잔디도 깎아주며 커피도 함께 마셨던 나의 친구 당신이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25억달러 2조 7천억원 코카콜라 주식 5%를 유산으로 남깁니다. 알고보니 그 노인은 바로 코카콜라 회장을 지냈던 분이셨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주한 미국대사 제임스 레이니입니 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제임스 레이니의 이야기가 왜 떠올랐을까요? 제임스 레이니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지극히 작은 자에게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바라기는 오늘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지극히 작은 자라는 마음을 가지고 그들을 환대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원합니다. 그럴 때 때로는 우리의 삶 속에서도 지극히 작은 자를 향한 기억도 하지 못하는 작은 섬김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제임스 레이니가 경험했던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우리의 삶 속에 현실이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