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 없이는

3월 20일 큐티 정지운 목사

마태복음 22장 23-33절

월터리프먼(Walter Lippmann, 1889-1974)이 쓴 여론이라는 책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정의를 내리기 위해서 무엇을 읽는 것이 아니라 정의를 먼저 내린 다음에 읽는다.” 오늘날 SNS의 가장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는 확증편향의 본질을 가장 잘 보여주는 글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확증편향에 빠지게 되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사두개인은 부활에 대해서 이미 자신들의 가지고 있던 정의를 가지고 예수님께 부활에 대해서 질문을 했습니다. 모세오경만 정경으로 믿고 있었던 사두개인들의 눈에는 오경 안에는 부활에 근거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월터리프먼의 말처럼 이미 정의를 내리고 모세오경을 읽은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사두개인의 모습이 오늘날 확증편향의 모습과 유사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왜 사두개인들은 이러한 확증편향에 빠지게 되었을까요? 사두개인들은 로마와 결탁한 타협주의자들이었고 부활을 믿지 않는 현실주의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두개인들에게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해서 오해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사두개인들의 성경에 대한 몰이해와 부활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부활은 무엇일까요? 그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부활의 때에는 결혼도, 출산도 필요 없는 상태로서 천사들과 같은 상태가 된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예수님께서는 부활하고 천국에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게 될 영광스러운 상태와 친밀한 교제를 나누게 될 것을 예고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모세 오경의 가장 핵심 인물이며 죽음을 맞이했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예로 드시면서 죽음으로 관계가 단절된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과의 관계는 영원토록 계속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히즈윌의 믿음이 없이는 찬양이 떠오르게 됩니다. 앞 부분의 가사는 주님 제 마음이 너무 둔해서 주님을 볼 수 없습니다. 이 땅에 속하여, 이 땅만 보다가 주님 손을 놓쳤습니다. 후렴에는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고된 수고도 다 헛될 뿐이라! 믿음이 없어서 무너진 삶의 모든 자리에 다시 주님을 기다립니다. 그렇습니다. 사두개인들은 이 땅에 속하여 이 땅만 보다가 부활을 믿지 못했습니다. 사두개인 뿐만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땅에 속하지 않은 믿음입니다. 죽은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이심을 기억하며, 부활을 소망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부디 오늘 하루 우리의 생각으로 정의를 내리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고백하고 성경을 읽어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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