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의 의미

3월 10일 큐티 정지운 목사

마태복음 19장 1-12절

최근 우리나라 이혼율 통계를 찾아보니 결혼 후 4년 이내인 신혼이혼보다 황혼이혼이 많다고 합니다. 이혼 비율을 살펴보면, 신혼이혼은 25%인데, 황혼이혼은 27%나 된다고 합니다. 자그마치 30년이나 결혼을 지속한 사람들이 왜 황혼이혼을 할까요? 인구구조가 고령화되면서 수명이 늘어나게 되었고, 자녀를 독립시킨 이후에 이혼을 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입니다. 팬데믹으로 인해서 이혼율이 소폭 감소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이혼율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얼마 전부터는 신성한 이혼이라는 드라마까지 방영되고 있으니 이혼에 대한 다양한 견해들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현실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 이혼에 대한 질문을 합니다. 어떤 정당한 사유가 있으면 이혼이 가능하냐는 질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질문에 이혼의 정당성에 대해서 이야기 하시기 보다는 결혼 본래의 의미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남자와 여자를 지으시고 동성결혼은 안 된다는 것입니다. 결혼은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는 부모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합니다. 아내에게 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되는 것으로 새로운 가정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결혼은 하나님 앞에서의 언약이며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다시 바리새인들은 모세가 이혼 증서를 주어서 이혼하라고 이야기한 것이냐고 예수님께 되물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완악함 때문에 이혼을 허용하셨다는 겁니다. 또한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드는 자는 간음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왜 음행한 이유라는 예외 조항을 이야기하셨을까요? 음행이라는 것이 이미 결혼 언약 관계를 파기한 것으로 간주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당시 유대인들의 자유로운 이혼에 대해서 음행한 이유 외에라는 단서 조항을 통해서 무분별한 이혼을 막기 위해서 하신 말씀이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말씀은 결혼이 매력적이지 않은 것으로 보였고 차라리 나 혼자 사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예수님께서는 천국을 위해서 스스로 독신을 선택한 사람들을 허용하셨습니다.

지금까지 목회를 하면서 이혼 상담을 받은 적이 수차례 있었습니다. 때로는 이혼하지 않고는 살 수 없을 정도의 상황의 성도님들을 만났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혼해야만 하는 명분을 찾기보다는 결혼의 의미를 다시 상기시키도록 했습니다. 제가 상담 한 분들 중에는 여전히 가정을 지속하고 있는 분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분들도 계십니다. 그러나 항상 우리는 이혼을 해야 하는 이유와 명분을 찾기 전에 결혼의 의미를 되새겨야 합니다.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깊이 묵상하면서 독신에 대해서도 결혼에 대해서도 이혼에 대해서도 신중해야 할 것입니다. 부디 오늘 하루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결혼의 의미에 대해서 깊이 묵상하는 하루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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