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받은 사람이 용서한다

3월 9일 큐티 정지운 목사

마태복음 18장 21-35절

오늘날 현대인들 중 많은 사람들이 3월 10일을 기다립니다. 학교폭력이라는 주제를 실감 나게 그려낸 드라마 ‘더 글로리’ 시즌 2를 통해서 보여줄 주인공의 본격적인 마라 맛 복수를 열광하며 기다립니다. 피해자들이 받은 상처와 아픔을 공감하면서 너무나 성급하게 가해자들을 용서하라고 말하는 것은 2차 가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이 용서에 대해서 더 큰 이야기를 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베드로의 질문과 예수님의 용서에 대한 비유입니다. 아마도 베드로는 예수님께 랍비들의 경우처럼 3번 쓰리아웃 정도까지도 아니고 조금 더해서 7번 정도면 되지 않을까요? 라고 질문했습니다. 어쩌면 베드로는 완전수 7번이면 충분하고 칭찬받을만한 질문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일흔번씩 일곱번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490번을 용서하라고 한 것일까요?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비유를 하나 들어주십니다. 왕이 결산해야 할 때에 만 달란트를 빚진 종의 빚을 그를 불쌍히 여겨서 탕감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백 데나리온의 빚을 진 동료를 옥에 가두었습니다. 이러한 소문이 왕에게 전해졌습니다. 왕은 다시 그를 불러서 악한 종이라고 하면서 이야기했습니다.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는데,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 같이 너도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않느냐고 팩트체크를 하였습니다. 화가 난 주인은 만 달란트를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겼습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질문이 생겼습니다. 왜 만 달란트를 탕감받은 종은 고작 백 데나리온을 받은 사람을 용서하지 못햇을까요? 만 달란트 빚진 종은 백데나리온 빚진 동료를 종으로 여기고 정작 자신은 용서의 주도권을 가진 왕이라고 착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복음이 무엇입니까? 복음은 온 우주의 재판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받아야 할 심판과 형벌을 피고인의 자리에서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무슨 이야기일까요? 용서의 주도권은 우리에게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용서는 예수님의 용서를 기억하며 마음으로 그들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의 마음에 아직 용서에 인색하다면 우리가 받은 용서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가해자가 예수님의 용서를 받았다면 피해자에게 찾아가서 진심으로 용서를 구해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위에서 아래로의 용서가 옆으로의 용서를 낳는 것입니다. 부디 오늘 하루 용서받은 사람이기에 아직 용서하지 못한 누군가를 향한 마음의 용서가 작동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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