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번이나 더 보름달을 바라볼 수 있을까?
8월 27일 큐티 정지운 목사
시편 90편 1-17절
최근에 읽은 책 가운데 영화음악의 거장 류이치 사카모토가 쓴 ‘나는 앞으로 몇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는 글을 시작하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죽음을 예측하지 못하고, 인생을 마르지 않는 샘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은 고작 몇 차례 일어날까 말까다. 자신의 삶을 좌우했다고 생각할 정도로 소중한 어린 시절의 기억조차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떠올릴 수 있을지 모른다. 많아야 네다섯 번 정도겠지.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보름달을 바라볼 수 있을까? 기껏해야 스무 번 정도 아닐까. 그러나 사람들은 기회가 무한하다고 여긴다.”
오늘 본문에 모세도 4절에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 10절에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이처럼 우리 인간은 유한한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유한한 존재인 우리는 그저 탄식하면서 살아야 할까요? 그런데 모세는 다음과 같은 솔루션을 제공합니다.
12절에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그런데 여기서 날 계수함은 날짜 계산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속에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를 회개할 수 있는 지혜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날마다 인식하는 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언젠가 박윤선 목사님께서 자신을 향해서 80년된 죄인이라고 고백하신 적이 있습니다. 밤을 새서 기도하시고 66권 주석을 다 쓰신 박윤선 박사님의 고백이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 인용한 류이치 사카모토의 고백처럼 우리는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삶의 기준이 아닙니다. 날 계수함 날마다 죄인임을 고백하면서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며 엎드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