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wing God

7월 14일 큐티 정지운 목사

예레미야 4장 19-31절

신학교에 들어가자마자 1학년 때 제임스 패커(J. I. Packer)의 ‘하나님을 아는 지식(Knowing God)’을 읽었습니다. 그 책에서 저자는 About God과 Knowing God을 대조합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아는 것과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아는 것은 전혀 다르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누구나 유명 운동선수들을 Youtube나 TV에서 보기 때문에 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선수들에 대해서 단순히 아는 것입니다. 그 사람과 일상을 공유하고 힘들고 어려울 때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라야 인격적으로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어리석은 자라고 기록됩니다. 왜 어리석은 자입니까? 지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미련하기 때문입니다. 악을 행하기에는 지각이 있는 것 같지만 선을 행하기에는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아는 자들은 하나님의 기준을 따라 행동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은 자기 멋대로 살아갑니다. 악을 행하는 데에는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지만 선을 행하는 데에는 아무런 생각이 없습니다. 결국 우리가 날마다 점검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D. L 무디의 말이 떠오릅니다. 성경은 Information이 아니라 Transformaion을 위해서 주어진 책이라는 것입니다. 정보를 안다고 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엄청난 책을 읽고 분석할 수 있다고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고 그분으로 인해서 우리의 삶이 변화되었다면 우리는 그분을 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안다고 말한다고 할 때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평생을 박사학위를 해도 자신이 전공한 분야의 일부분을 알 뿐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평생을 신앙생활을 해도 하나님을 다 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신앙생활을 할수록 하나님 앞에서 겸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하루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알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고 있습니까?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알기 위해서 부단히 애쓰고 있습니까? 바라기는 오늘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에 대해서 내가 안다고 쉽게 내뱉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주님을 경외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피조물임을 고백하는 하루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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