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정너에게는 복음이 들리지 않는다

2월15일 큐티 정지운 목사

마태복음 11장 16-19절

최근에 많이 사용되는 신조어 중에 ‘답정너’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행동경제학에서는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확증편향은 특정 사실에 집중하면 다른 것들을 보지 못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답정너와 같이 확증편향을 보이고 있는 세대의 모습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세대를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라고 하셨습니다. 피리를 부는 사람과 슬피 우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세례요한과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당시 종교지도자들의 반응은 어떠합니까? 춤추지 않습니다. 가슴을 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례요한을 향해서 귀신이 들렸다 하고, 인자가 와서 먹고 마시매 먹기를 탐하고 즐기는 사람이고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는 것입니다. 왜 이들은 세례요한과 예수님에 대해서 혹평을 하고 있을까요? 왜냐하면 이들은 이미 답이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묵상을 하면서 과연 나는 종교 지도자들처럼 확증편향에 빠져 있지 않은지 돌아보게 됩니다. 답정너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해서 ‘답정하’, 내가 원하는 답은 정해져 있고 하나님은 응답만 하시면 된다고 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게 됩니다. 바라기는 피리를 부시고 슬피 우시는 주님의 메가폰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세례요한처럼 절제하며, 예수님처럼 복음이 필요한 이들의 친구가 되어서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Previous
Previous

힘빼야 쉼이있다

Next
Next

마음의 마지노선이 무너질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