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마지노선이 무너질 때
2월 14일 큐티 정지운 목사
마태복음 11장 2-10절
1차 세계전이 끝난 후 프랑스는 언제라도 독일이 다시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는 불안한 마음에 총길이 70킬로미터나 되는 방어벽을 만들었습니다. 그 당시 160억 프랑 오늘날로 환산하면 20조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습니다. 당시 프랑스 육군 장군이었던 앙드레 마지노의 이름을 따서 마니노선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버틸 수 있는 마지막 한계선이라는 의미로 마지노선이라는 단어가 사용되게 되었습니다.
우리 인간에게도 마음의 마지노선이 있습니다. 12학년에게는 가고 싶은 대학의 마지노선이 있고 취업 준비생들에게는 들어가고 싶은 회사의 마지노선이 있습니다. 결혼을 준비하는 청년들에게도 배우자의 마지노선이 있고, 사춘기 자녀를 키우는 부모님들에게는 인내의 마지노선이 있습니다. 자영업을 하는 가장들에게는 매출의 마지노선이, 인생의 황혼을 살아가는 노년의 성도님들에게는 건강의 마지노선이 있습니다. 그런데 눈앞에 있는 현실이 펼쳐질 때 마음의 마지노선이 무너지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는 마지노선이 무너진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세례요한입니다. 세례요한에게는 예수님에 대한 큰 기대가 있었습니다. 메시아가 오시면 이스라엘 백성을 압제하는 로마를 심판할 것이고, 감옥에 갇힌 세례요한도 자유케 해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심판은 커녕 면회 한 번 안 오시고 죄인들과 세리들과 식사를 하신다는 이야기가 제자들을 통해서 들려오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의 마음의 마지노선이 무너졌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세례요한의 제자들에게 심판만 하시는 메시아가 아니라 구원하시는 메시아임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세례요한이 생각하는 메시아는 반쪽짜리라는 것입니다. 결국 마지노선이 무너진 이유는 하나님의 능력에 마지노선을 그은 세례요한에게 있음을 간접적으로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세례요한을 인정해주시고 사명의 길을 걸어가길 격려해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마음의 마지노선이 무너질 때 하나님의 능력에는 마지노선이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겨봅니다. 나의 기대와 현실이 다르다고 하나님의 손이 짧아진 것이 아닙니다. 내 믿음이 작아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사명의 새로고침입니다. 예수님의 오시기를 예비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사명의 길을 걸어가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입니다. 바라기는 오늘 하루 마음의 마지노선이 무너질 때 마음을 새로고침하며 믿음의 경주를 달려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