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거룩한 상상력이다
2월 8일 큐티 정지운 목사
마태복음 9장 18-26절
메시지 성경을 번역한 목회자들의 목회자로 불리는 고 유진 피터슨 목사님은 “상상력이 지배당하면 선한 것과 아름다운 것을 볼 수 없게 된다”라고 말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거룩한 상상력이 있으면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게 되고 아름다운 것들을 묵상하게 됩니다. 이처럼 믿음은 거룩한 상상력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거룩한 상상력을 가진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한 사람은 관리라고 불리는 회당자 야이로였습니다. 예수님께 나아와 내 딸이 방금 죽었사오나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어 주소서! 그러면 살아나겠나이다. 이미 죽었는데,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가 싶습니다.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습니까? 야이로에게는 거룩한 상상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야이로의 집에 가셔서 소년의 손을 잡으시매 죽은 딸이 일어났습니다. 야이로의 상상력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또 다른 한 사람은 열두 해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님의 뒤로 와서 예수님의 겉옷 가를 만졌습니다. 마음에 뭐라고 고백합니까? 그 겉옷만 만져도 야이로 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야이로는 직접 접촉이었는데, 혈루증을 앓는 여인은 간접 접촉만 해도 낫겠다고 고백합니다. 이 여인에게도 무엇이 있었습니까? 거룩한 상상력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돌이켜 그를 보시고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선포하셨고 즉시 구원을 받았습니다. 왜 병이 나았다라고 하지 않고 구원을 받았다라고 했을까요? 예수님의 관심은 그 여인의 질병의 치유 너머의 죄로부터의 정결케 되는 것이 진정한 회복이라는 것을 선포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야이로와 혈루증을 앓는 여인의 믿음과 대조되는 야이로의 집에 피리 부는 자들과 떠드는 무리들은 야이로의 딸이 잔다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비웃었습니다. 이들이 비웃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들에게는 믿음이 없었고, 믿음 없음은 타락한 상상력을 가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치유의 현장에서 내보내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예수님께서는 불신의 현장에서 일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믿음은 거룩한 상상력이고, 믿음 없음은 타락한 상상력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야이로와 혈루증 여인에게는 거룩한 상상력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몸에 손만 얹어도 나을 것이다. 겉옷만 만져도 나을 것이라는 거룩한 상상력! 그러나 피리 부는 자들과 떠드는 무리들은 믿음 없이 타락한 상상력으로 가득 차 유진 피터슨의 말처럼 상상력이 지배당해서 선한 것과 아름다운 것들을 볼 수 없었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부디 세상의 가치와 논리에 상상력을 지배당하지 않음으로, 야이로와 혈루증 걸린 여인처럼 거룩한 상상력으로 가지고 예수님 앞으로 우리의 인생의 기도 제목을 가지고 나아오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