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평가 기준

2월 7일 큐티 정지운 목사

마태복음 9장 1-8절

예수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평가하실 때 무엇을 보실까요? 어느 집안 출신인가? 어느 학교를 나왔는가? 얼마나 능력이 있는가? 아닙니다. 사복음서를 읽으면서 예수님께서 기적을 베푸실 때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표현이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을 보시고’라는 표현입니다. 무슨 이야기일까요? 예수님의 평가기준은 믿음입니다.

오늘 본문 2절에 보면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평자에게 죄사함을 선언하셨습니다. 마가복음에 2장 3절에 보면 네 사람의 중풍병자를 내렸다고 합니다. 심지어 지붕을 뜯어서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내렸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3절에 보면 똑같은 상황에 서기관들은 이 사람이 신성을 모독하도다! 라고 전혀 다르게 반응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믿음 없이 예수님을 향해서 속으로 독설을 날린 그들에게 돌직구로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아마도 서기관들을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더 생각해볼 것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믿음 없이 툭 하고 내 뱉는 말에 대해서 악하다고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눈에는 불신으로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는 것을 악한 생각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도리어 예수님께서는 역질문을 던지십니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 당연히 죄사함 받았다는 말이 더 쉽습니다. 일어나 걸어가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더 쉬운 일인 중풍병자가 일어나 걸어가게 되었으니 인자 곧 예수님께서 신성모독이 아닌 죄사함을 권능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이 입증이 된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예수님의 평가기준을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서기관들은 율법에 능통했지만 전문가의 저주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반면에 중풍병자를 데려온 친구들에게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관심은 얼마나 많은 지식을 가졌고 어떤 타이틀을 가졌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믿음을 보십니다. 오늘 우리의 마음을 예수님께서 들여다 보신다면 믿음의 스위치가 켜져 있을까요? 아니면 꺼져 있을까요? 부디 오늘 하루 믿음을 보시는 주님 앞에 대안 없이 분석만 늘어놓은 무의미한 포트폴리오가 아니라 초라해보여도 오직 예수님만이 대안임을 고백하는 단순한 믿음으로 달려가는 예수님의 평가기준에 부합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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