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울질하지 말라

10월 19일 큐티 정지운 목사

열왕기상 18장 16-29절

최근에 사용되는 신조어 중에 가성비라는 표현을 보게 됩니다. 가성비라는 단어는 가격 대비 성능 비율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들어진 것으로 가격 경쟁력이라는 말과 비슷한 의미로 사용이 됩니다. 우리는 물건을 살 때 가성비를 따집니다. 어떤 제품을 선택했을 때 가성비를 따지게 되고 마음은 여러 개의 상품을 놓고 저울질하게 됩니다. 영적인 세계에서도 저울질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을 섬길 것인가? 아니면 내가 원하는 욕망을 따라서 우상을 섬길 것인가?

오늘 본문에는 엘리야와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의 850대 1의 영적 전투가 시작이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엘리야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하려느냐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 엘리야는 머뭇거린다고 말하고 있을까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바알의 우상숭배를 적극적으로 반대하지도 않았음을 보게 됩니다. 결국 혼합주의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결국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신앙생활을 한다는 사람들 중에도 이러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울질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도 계산기를 두드립니다. 마치 물건을 놓고 가성비를 따지듯이 신앙생활도 가성비를 따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딜 하듯이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은 저울질하듯, 가성비를 따지듯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머뭇거리고 있다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의 교수였던 코넬리우스 반틸은 중간 지대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신앙 생활과 불신자들의 삶은 공통분모가 없습니다. 똑같은 강의를 들어도 세계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바라기는 오늘 하루 이스라엘 백성처럼 이기는 편 내편이라는 식이 아니라 엘리야처럼 하나님께 모든 것을 걸고 신앙의 절개를 지키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을 신앙의 안전지대에 거하게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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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적인 상황은 소망 스토리의 재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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