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정너에게는 듣는 마음이 없다
10월 3일 큐티 정지운 목사
열왕기상 12장 1-11절
신조어 중에 ‘답정너’라는 말이 있습니다.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의 줄임말입니다. 답정너에게는 답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상대방은 대답만 하면 됩니다. 이러한 답정너에게는 듣는 마음이 없습니다. 답이 자신에게 있기 때문에 상대방은 대답만 하면 될 뿐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답정너 르보호암이 나옵니다. 여보로암은 르호보암에게 왕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르호보암은 3일의 시간을 달라고 합니다. 그리고는 솔로몬의 생전에 모셨던 원로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여기까지 보면 르호보암에게는 듣는 마음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8절에 르호보암은 왕이 노인들이 자문하는 것을 버리고 자기와 함께 자라난 어린 사람들과 의논하며 그들의 의견을 따라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결국 듣고 싶었던 말은 노인들의 말이 아니라 어린 사람들의 말이었습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르호보암은 답정너였습니다. 이미 듣고 싶은 말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왜 르호보암은 답정너였을까? 질문을 던져보게 됩니다. 르호보암은 할아버지 다윗이 하나님께 묻고 또 물었던 신앙이 없었습니다. 묻지 않는 사람들의 특징은 교만이 깊이 뿌리내려져 있습니다. 나는 너무 잘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묻지 않습니다. 답정너들은 기도하지 않습니다. 다윗은 어떻습니까? 다윗은 수많은 사람들의 조언을 들어도 다윗은 마지막 답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살았습니다.
이처럼 르호보암은 다윗과 다르게 하나님께 묻지 않습니다. 답을 정해놓고 귀를 즐겁게 하는 소리를 듣고 싶어합니다. 바라기는 우리의 삶 속에서 르호보암과 같은 답정너의 상태인지 하나님께 답을 구하는 다윗과 같은지 우리의 삶을 항상 점검하길 원합니다. 오늘 하루 듣고 싶은 말만 듣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분별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