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touched me

4월 28일 큐티 정지운 목사

민수기 19장 11-22

장례식에 가게 되면 죽음으로 인한 슬픔의 현장 속에서 고뇌하게 됩니다. 왜 우리 인간은 죽음 앞에서 깊은 상념에 젖게 될까요? 그 이유는 죽음은 우리 본래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죽도록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죽음은 죄가 이 세상에 들어옴으로 말미암아 시작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죽은 사람 곧 시체를 만진 자는 부정하게 되는데, 그것을 어떻게 해결하는가에 대한 내용입니다. 시체를 만진 사람은 7일 동안 부정하게 되고 3일째와 7일째에 정결케 해야 했습니다. 만약 그 기간에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면 부정하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죽은 사람의 장막에 들어가는 자와 장막에 있는 자는 이레 동안 부정하게 되었으며 뚜껑을 열어놓고 덮지 않은 그릇과 무덤을 만진 자까지도 부정하게 됩니다.

부정한 자는 어떻게 다시 정결하게 될 수 있습니까? 17절과 19절에 답이 나와 있습니다. 그 부정한 자를 위하여 죄를 깨끗하게 하려고 불사른 재를 가져다가 흐르는 물과 함께 그릇에 담고 정결한 자가 우슬초를 가져다가 그 물을 찍어 장막과 그 모든 기구와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뿌리고 또 뼈나 죽임을 당한 자나 시체나 무덤을 만진 자에게 뿌리되 그 정결한 자가 셋째 날과 일곱째 날에 그 부정한 자에게 뿌려서 일곱째 날에 그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그는 자기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라 저녁이면 정결하리라. 여기서 중요한 내용이 무엇입니까?? 정결한 자입니다. 부정한 자는 자기 자신이 부정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정결한 자가 필요합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오늘날 우리에게 적용한다면 무엇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까?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굳어져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막히지 않도록 우리의 삶을 날마다 점검해야 합니다. 또한 부정한 자가 자기 자신의 부정을 해결할 수 없는 존재인 것처럼 우리 역시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는 정결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속에 나타난 정결한 자는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구약 시대 죽은 시체를 만진 자는 부정하게 되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이후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존 오웬의 명저 ‘The Death of Death in the Death of Christ’에서 상세히 밝히고 있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 안에서 죽음은 죽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주의 옷자락만 만져도 회복될 것을 믿었던 혈루증 걸린 여인처럼 우리는 그가 나를 만지셔서 정결케 되었음을 기억하며 주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 회개할 때 주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것입니다. 바라기는 오늘 하루 그가 나를 만지셔서 우리의 영혼이 회복되었음을 기뻐하며, 넘어졌다면 예수님 나를 만져주시옵소서 간절히 기도함으로 회복의 은혜를 누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Previous
Previous

과유불급

Next
Next

보혈의 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