갚을 수 없는 은혜

4월 26일 큐티 정지운 목사

민수기 18장 21-32절

십일조는 오늘날 논쟁이 가장 많은 것 중 하나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크게 십일조가 폐지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주장과 여전히 유효하다는 주장 두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저는 오늘날 십일조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입장을 지지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그대로 믿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레위인의 기업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십일조가 몫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레위인들도 이스라엘 백성으로부터 받은 십일조에 대한 십일조를 반드시 드려야 합니다. 특별히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레위인들의 수고에 대한 반응으로 하나님께 드려야 했습니다. 이처럼 십일조는 갚음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갚음이라는 것은 일대일 대응되는 것이 아님을 주목해야 합니다. 십일조가 레위인들의 수고와 일대일 대응할 수 없습니다. 또한 레위인들이 드리는 십일조도 마찬가지입니다. 드림이라는 것은 우리가 물건을 살 때 돈을 지불하고 사는 방식이 아닙니다. 결국 십일조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신 분임을 인정하고 십의 일을 드리든 십의 이를 드리든 하나님께 믿음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십일조는 갚을 수 없는 은혜에 대한 반응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갚을 수 있어서가 아닙니다. 갚을 수 없는 은혜입니다. 왜 갚을 수 없는 은혜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십의 일을 주신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를 위해서 모든 것을 다 주셨습니다. 만약 우리의 삶 가운데 십의 일이 아깝다면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가볍게 여기는 것입니다. 따라서 십일조를 드렸다고 해서 내가 해야 할 의무를 다한 것으로 생각해서도 안되며, 십일조를 할 수 없는 환경과 여건을 당연한 것처럼 여겨서도 안됩니다. 갚을 수 없는 은혜를 아는 사람은 더 드릴 것이 없어서 항상 송구한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미국에서의 이민자로 살아가는 것은 녹록지 않다는 것을 날마다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광야와 같은 미국 생활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늘 먹이시고 입히시고 채우시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바라기는 하루하루 살아가면 살수록 갚을 수 없는 은혜가 쌓여 가는 것을 기억하며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기에 하나님께 힘껏 드릴 수 있는 믿음의 성도님들이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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