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괜찮은 해피엔딩

12월 20일 큐티 정지운 목사

욥기 42장 1-17절

‘지선아 사랑해’의 저자 이지선 씨가 쓴 ‘꽤 괜찮은 해피엔딩’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이지선 씨는 사고 후 2년 동안은 ‘사고를 당한 사람 피해자’로 자신을 규정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더 이상 피해자로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사고를 만난 사람’이라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23년이 지난 지금은 ‘사고와 잘 헤어진 사람’이라고 하면서 지금은 꽤 괜찮은 해피엔딩을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욥의 꽤 괜찮은 해피엔딩을 보여줍니다. 폭풍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욥은 전능하신 하나님과 논쟁하지 않습니다. 고 유석경 전도사님은 ‘당신은 하나님을 오해하고 있습니다’라는 책에서 “이해할 수 있다면 하나님은 이미 하나님이 아닙니다. 나는 하나님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그저 신뢰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논쟁의 대상이 아니라 신뢰의 대상이십니다. 욥은 더 이상 귀의 지식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눈의 지혜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고통 속에서 창조의 능력만 행하시는 분이 아니라 고통 중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고백합니다.

기독교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우리 인간은 마차 밖으로 나올 때 우리의 눈으로 비로소 마차 안에서 보지 못했던 밤하늘에 가득한 쏟아지는 별들을 보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아집과 고집, 자아의 마차에서 나올 때 하나님의 부재가 아닌 임재를 경험하게 됩니다.

야고보서 5장 11절은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시니라 주께서 주신 결말은 욥이 고통의 밤이 아니었다면 만날 수 없었던 하나님이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논쟁의 대상이 아니라 신뢰의 대상인 그 하나님! 귀의 지식이 아니라 눈의 지혜로 다가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처럼 우리를 향한 하나님께서 주실 결말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바라기는 오늘 하루 전능하신 하나님과 논쟁하는 것이 아니라 교제하며, 귀의 지식이 아니라 눈의 지혜를 가지고 믿음으로 해피엔딩을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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