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에서 소통으로
12월 15일 큐티 정지운 목사
욥기 38장 1절-18절
허준의 동의보감에는 통즉불통 볼통즉통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소통이 되면 고통이 없고, 소통이 안 되면 고통이 온다는 뜻입니다. 아마도 혈이 막혀서 피가 흐르지 않으면 고통스럽다는 의미로 한 말일 것입니다. 이처럼 소통이 되지 않으면 고통이 찾아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욥은 욥의 친구들과 엘리후까지 합세하여 소통의 문제로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욥에게 아무런 말씀이 없으시던 하나님께서 드디어 말씀하십니다. 막힌 혈이 뚫리듯이 욥의 마음이 막힌 것들이 뚫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질문을 쏟아내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욥의 좁은 마음에 가둘 수 없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청교도의 황태자라고 불리는 존 오웬은 삼위일체에 대해서 연구하면서 논쟁의 끝에서 창조주 하나님은 피조물의 생각에 갇히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너무나 탁월한 통찰입니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인 우리 인간과 인격적으로 소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타난 신들은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입니다. 끊임없이 사랑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질투합니다. 이러한 신화 속의 신들은 성경의 하나님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그들은 때로는 우리 인간을 착취하기도 하고 마음대로 컨트롤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는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알게 되는 것은 고통의 문제의 해결은 하나님과의 소통을 통해서 해결된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우리 인간은 안정감을 누리게 됩니다. 좁은 생각 속에서 갇히지 않는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영광스러운 주님의 임재 속에서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고난의 커튼은 창조주 하나님의 임재를 가릴 수 없습니다. 고난 속에서도 여전히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여전히 우리를 위해서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기억할 때 우리는 고통에서 소통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바라기는 오늘 하루 우리의 좁은 마음을 깨뜨리고 광대하신 하나님과 소통하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