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거리감을 만들지 말라
12월 14일 큐티 정지운 목사
욥기 36장 26절-37장 24절
인간관계에서는 적당한 거리감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배우 정우성과 이정재는 25년 동안 우정을 이어오고 있지만 여전히 존댓말로 대화한다고 합니다. 서로 존중을 잃어버리지 않고 있는 셈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인간관계에서 분명히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다릅니다. 창세기 3장의 타락한 아담은 하나님의 낯을 피합니다. 하나님과 산책하던 사이에서 어색하고 부담스러운 존재가 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과 적당한 거리감을 갖는다는 것은 기러기 부부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엘리후는 멀리 계시는 하나님의 모습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하나님과 일대일 관계 속에서 소통하고자 하는 욥이 어리석다고 말합니다. 엘리후의 말이 모두 틀린 것은 아니지만 반쪽짜리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인 우리 인간과 소통하길 원하십니다. 인격적으로 교제하길 원하십니다. 지금 엘리후는 엘리후의 하나님을 욥에게 강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욥에게 하나님은 가까이 계시는 하나님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과 우리의 친밀도는 1에서 100까지라면 얼마일까?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혹시 기러기 아빠들이 종종 토로하듯이 ATM기처럼 자기 자신이 느껴진다고 하듯이 우리가 하나님을 기러기 아빠처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살아가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초월하신 하나님이시지만 내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만유재신론과는 다른 입장입니다. 만물이 하나님 안에 내재하고 있으며 하나님은 만물을 포괄하면서도 초월한다는 주장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은 성경적인 입장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거리감을 두길 원하지 않으신다는 겁니다.
오늘 하나님과의 친밀감은 몇점이십니까? 50점 이하라면 올라갈 일만 남았습니다. 90점이라면 여전히 10점의 거리감을 좁혀야 합니다. 바라기는 오늘 하루만큼 하나님과의 거리감을 좁히며 친밀함을 회복함으로 주님과 더 깊이 소통하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