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살리지 못하면 지혜가 아니다

12월 13일 큐티 정지운 목사

욥기 36장 1-25절

지혜란 사물의 도리나 선악을 잘 분별하는 마음의 작용을 의미합니다. 지혜가 사람에게 쓰일 때는 인간의 기술로써, 하나님께 사용될 때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인도하시는 지혜를 의미합니다. 이처럼 지혜는 타인에게 유익을 주는 것으로 사람을 살립니다. 결국 아무리 탁월한 지식이라고 할지라도 사람을 살리는 데 쓰이지 않으면 지혜가 될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엘리후가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시키지도 않은 하나님 변호를 자처합니다. 그러나 엘리후가 말하는 하나님은 엘리후의 세계관 속에 갇힌 하나님입니다. 그는 욥의 세 친구들과는 다르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인과응보의 세계관 속에 갇혀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욥의 죄 때문에 하나님께 벌을 받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모든 고난이 죄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에 대한 더 큰 관점을 가지고 계십니다. 죄 때문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고난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엘리후는 자신의 말이 욥에게 어떻게 다가왔을지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살리기보다는 오히려 욥을 낙심시키고 있습니다. 엘리후는 그의 생각으로 욥의 심정을 다 담아낼 수 없음에도 오만과 오기를 부리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사람을 살리지 못하면 지혜가 아니라는 묵상을 하게 됩니다. 엘리후는 하나님은 변호했지만 욥의 마음은 대변해 주지 못했습니다. 참된 지혜는 낙심한 영혼을 회복시키고 살려내야 합니다. 그렇다면 왜 엘리후의 지식은 사람을 살려내지 못했을까요? 엘리후가 생각하는 축소된 하나님을 가지고 욥에게 정답을 강요하듯이 주입식으로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엘리후의 생각 속에 갇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욥을 분리해서 생각할 것이 아니라 욥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생각할 때 우리는 욥의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습니다. 바라기는 오늘 하루 우리가 가진 지식으로 누군가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지혜가 되어서 그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위로하는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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