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후의 확증편향

12월 12일 큐티 정지운 목사

욥기 34장 31절-35장 16절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란 가설의 진위를 가리거나 문제를 해결할 때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만을 취하고 상반되는 정보는 무시하는 무의식적 사고 성향을 의미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확증편향에 빠진 사람일수록 자기 자신은 편향적이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자신이 믿고 싶은 정보를 맹신하고 싫어하는 정보는 배척합니다. 자신은 이성적이라고 생각하고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은 비이성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엘리후는 확증편향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엘리후는 욥의 친구들과는 거리를 두려고 하지만 엘리후는 욥의 친구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욥의 친구들의 생각을 엘리후의 말로 바꾸었을 뿐입니다. 엘리후가 볼 때 욥은 회개하지 않고 진상부리는 악인에 불과했습니다.

또한 엘리후는 초월하신 하나님은 욥의 죄와 악행에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엘리후의 주장은 반쪽짜리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초월하시지만 내재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엘리후의 주장은 영국의 이신론자들의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신론이란 하나님은 존재하나 하나님이 직접적으로 이 세상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마치 하나님은 시계를 만들어 태엽을 감고 시간이 알아서 흐르게 두는 시계 제조공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의 문제점은 창조주 하나님과 하나님의 형상인 우리 인간의 관계를 간과하는 주장입니다.

더 나아가 엘리후는 욥의 부르짖음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시지 않는 것은 욥의 기도에 문제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기도는 하나님과의 욥의 일대일의 관계에 대한 것임에도 엘리후는 마치 하나님이라도 된 것처럼 교만하게 욥의 기도를 평가하고 있습니다. 엘리후가 욥을 위해서 해야 할 것은 판단이 아니라 기도였습니다. 결국 엘리후는 확증편향에 갇혀서 정작 해야 할 것을 하지 않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보게 되는 확증편향은 좁은 마음이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엘리후는 욥의 친구들과 다른 것처럼 세상의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종지그릇 엘리후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자기 자신이 생각과 의견이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살아갑니다. 균형을 잡기 위해서 부단히 애를 쓰면서 살아갑니다. 하나님만이 옳으시기에 섣부르게 판단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확증편향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요? 생각 속에서 결론 내리고 정리하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한번 규정하면 다른 생각이 들어가기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축복하고 위로할 때 모든 사람은 믿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더 사랑해야 할 대상일 뿐입니다. 바라기는 오늘 하루 엘리후의 확증편향을 기억하며 좁은 마음이 아니라 넓은 마음으로 더 많은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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