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객관화의 실패
12월 9일 큐티 정지운 목사
욥기 32장 1절-22절
국민대학교 김옥희교수는 저서 『인간관계론』에서 자기 객관화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자기 객관화란 자신을 객체로 알며,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자기가 바라는 자신, 남들이 보는 자신 간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의견에 대해 개방적이어서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한 깊은 이해를 지니게 된다.” 이처럼 자기 객관화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별함으로 효율적으로 인생을 설계하게 만듭니다.
오늘 본문은 자기 객관화에 실패한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엘리후입니다. 엘리후는 욥과 세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참다 못해 화를 내면서 등장합니다. 욥에 대해서도 욥의 친구들에 대해서 못마땅했습니다. 특별히 엘리후의 전제는 나이 들었다고 다 지혜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마치 자기 자신이 전능자의 숨결과 하나님의 영이 머무는 특별한 존재라도 된 것처럼 욥과 욥의 친구들과 자기 자신은 다르다는 것을 은근히 드러냅니다.
마치 엘리후는 모든 것을 총정리할 수 있는 종결자라도 된 것처럼 행세합니다. 자기 자신 속에는 말이 가득하며 영이 말하도록 압박하고 있으며, 지혜가 흘러넘치는 사람인 것처럼 말하며,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추구하는 사람이며 아첨할 줄도 모르고 하나님과 친밀한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특별한 사람인 것처럼 생각합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자기 객관화에 실패한 엘리후의 모습을 보면서 오늘날 현대인들의 교만의 중심을 보게 됩니다. 교만한 사람은 분노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지혜를 무시합니다. 자기 자신은 다른 사람들과 다른 특별한 존재라도 된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왜 엘리후는 자기 객관화에 실패했을까요? 실패의 이유는 자기 객관화의 정의에 잘 나와 있습니다. 자신을 객체로 알지 않고 주체로 알며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식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지에 대해서 그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엘리후는 타인과 다른 존재로 자기 자신을 생각함으로써 겸손한 척 하지만 진짜 교만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자기 자신을 낮추는 사람이 겸손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감정과 생각을 공감하고 배려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먼저 존중합니다. 나를 낮추는 척하면서 도리어 높임으로써 자기 객관화에 실패할 수 있습니다. 바라기는 오늘 하루 자기 객관화에 실패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객관화에 성공함으로 지혜롭게 살아가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