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딩지저스 16주차 5일
욥기 29장에서 욥은 과거의 영광을 회상합니다. 하나님의 보호 아래서 존경받으며 살아가던 시절, 약한 자들을 도우며 의로운 삶을 살았던 나날들이 떠오릅니다. 그러나 이 회상은 현재의 비참함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는 그림자가 됩니다.
리딩지저스 관점에서 욥기 29장을 읽으면, 예수님은 하늘의 영광을 기억할 수 있는 분이셨지만, 그 영광을 내려놓고 낮고 천한 자리로 오신 분이십니다. 복음은 잃어버린 영광을 되찾는 이야기가 아니라, 잃어버린 영혼을 구하려 스스로 비워내신 사랑의 이야기입니다.
욥기 30장에서 욥은 현재의 고통을 고백합니다. 조롱받고 버림받는 신세가 된 자신을 보며, 사람들의 냉대와 하나님의 침묵 사이에서 괴로워합니다. 그의 고백은 처절하고, 외침은 절규에 가깝습니다.
리딩지저스 관점에서 욥기 30장을 읽으면, 예수님은 사람들의 조롱과 멸시를 받으셨고, 십자가 위에서 홀로 버림받으셨습니다. 복음은 우리의 고통을 방관하지 않고, 스스로 그 고통 안으로 들어오신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줍니다.
욥기 31장에서 욥은 자기 삶의 무결함을 하나하나 열거하며, 하나님 앞에서 결백을 호소합니다. 눈의 정결함, 손의 청결함, 가난한 자에 대한 배려, 우상 숭배에 대한 경계까지 욥은 자신의 삶을 철저히 성찰합니다.
리딩지저스 관점에서 욥기 31장을 읽으면, 예수님은 죄 없으신 분으로서 단 한 번도 변명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죄인의 자리에 서서 침묵하셨습니다. 복음은 나의 결백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의로 나를 덮으시는 은혜를 믿는 길입니다.
욥기 32장에서 드디어 엘리후가 등장합니다. 그는 젊은 자로서 오랫동안 침묵하다가, 친구들의 정죄와 욥의 자기 의로움을 모두 책망하며 발언을 시작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절대성을 강조하며,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려 합니다.
리딩지저스 관점에서 욥기 32장을 읽으면, 예수님은 우리의 논쟁을 잠재우시고, 참된 중보자로 말씀하신 분이십니다. 사람들의 말이 침묵에 이를 때, 복음은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려옵니다.
욥기 33장에서 엘리후는 욥의 고백에 반박하며, 고난이 반드시 죄에 대한 형벌만은 아님을 말합니다. 그는 고난을 하나님의 자비의 방편으로 보며, 그 안에 경고와 회복의 가능성이 있음을 강조합니다.
리딩지저스 관점에서 욥기 33장을 읽으면, 예수님은 고난을 통해 우리를 징벌하시는 분이 아니라, 회복으로 초대하시는 분이십니다. 복음은 고난을 통해 다가오는 하나님의 손길을 오해하지 않고, 그 속에서 사랑의 메시지를 듣는 것입니다.
욥기 34장에서 엘리후는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 열변을 토합니다. 하나님은 악을 결코 간과하지 않으며, 모든 사람의 행위에 따라 심판하신다는 확고한 주장을 펼칩니다. 그러나 그의 말 속에는 인간의 고통에 대한 깊은 이해보다는, 논리적 정당성이 앞서 있습니다.
리딩지저스 관점에서 욥기 34장을 읽으면, 예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면서도, 죄인을 위해 스스로 심판받으신 분이십니다. 복음은 단순한 인과의 공의가 아니라, 사랑으로 덮으시는 공의입니다. 십자가는 가장 엄격한 정의와 가장 깊은 자비가 만난 자리입니다.
욥기 35장에서 엘리후는 욥의 반응을 비판하며, 하나님은 인간의 의로움에 영향을 받지 않으신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욥의 질문을 하늘을 향한 소음으로 묘사하며, 참된 겸손과 경외를 촉구합니다.
리딩지저스 관점에서 욥기 35장을 읽으면, 예수님은 우리의 질문을 소음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눈물로 들어주시는 분이십니다. 겟세마네의 기도처럼, 우리의 탄식과 신음은 하나님께 상달되는 사랑의 언어입니다. 복음은 하늘을 울리는 믿음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따뜻한 응시입니다.
주님, 내 고난의 소리가 하늘에 닿지 않는 듯해도 당신은 귀를 기울이고 계신 줄 믿습니다. 내 의로움을 주장하고 싶을 때, 주님의 십자가 앞에 다시 엎드리게 하시고, 고통 속에서도 정의와 자비가 만나는 당신의 마음을 보게 하소서. 오늘도 내가 입술로 전하는 복음보다 삶으로 드러나는 복음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말보다 사랑으로, 정죄보다 품음으로, 예수님처럼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