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딩지저스 16주차 3일
욥기 15장은 엘리바스가 다시 욥을 정죄합니다. 그는 욥이 입술로 죄를 짓고 있다고 말하며, 고난은 결국 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는 조상들의 지혜를 인용하며, 하나님의 심판이 악인에게 임한다고 강조합니다.
리딩지저스 관점에서 욥기 15장을 읽으면 예수님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를 말로 누르지 않으시고, 몸으로 감당하신 분이십니다. 엘리바스는 말을 쏘아 붙이지만, 예수님은 침묵 속에서 고난의 잔을 받으셨습니다. 복음은 설득이 아니라, 십자가로 증명된 사랑입니다.
욥기 16장은 욥의 친구들이 위로가 아닌 고통을 더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하나님이 나를 찢고 삼키신다"고 호소하며, 억울함을 토로합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나의 증인이 하늘에 계시다”는 신앙의 불꽃도 피어납니다.
리딩지저스 관점에서 욥기 16장을 읽으면 예수님은 하늘 보좌에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참 증인이십니다. 고난 가운데서도 중보자가 있다는 사실이 신자의 숨 쉴 틈입니다. 복음은 억울한 이의 편에 서서, 그 마음을 대변해 주는 증인의 목소리입니다.
욥기 17장은 욥이 소망이 끊어진 자처럼 절망합니다. 친구들의 말은 그에게 그림자뿐이고, 무덤 외엔 위로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하나님께 향한 신앙의 흔적을 놓지 않습니다.
리딩지저스 관점에서 욥기 17장을 읽으면 예수님은 무덤을 소망의 출입문으로 바꾸신 분이십니다. 욥이 “무덤이 나의 집이라”고 했던 그 자리에, 예수님은 부활의 빛을 비추셨습니다. 복음은 끝이 끝이 아님을 선포하는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욥기 18장은 빌닷이 다시 욥에게 말하며, 악인의 운명을 길게 묘사합니다. 그는 고난이 악인의 몫이라고 말하며, 욥을 그 자리에 대입시키려 합니다. 그의 말은 진리처럼 보이지만, 자비가 빠져 있습니다.
리딩지저스 관점에서 욥기 18장을 읽으면 예수님은 악인을 향한 심판을 말하기 전에, 그 심판을 자신이 대신 받으셨습니다. 복음은 옳고 그름을 나누기 전에, 죄인을 안고 십자가로 가신 하나님의 길입니다. 진리는 사랑 없이는 결코 복음이 아닙니다.
욥기 19장은 욥의 친구들의 말이 자신을 찌르는 고통이라 말합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라는 찬란한 고백이 터져 나옵니다. 고난의 밑바닥에서, 그는 살아 계신 구속자를 바라봅니다.
리딩지저스 관점에서 욥기 19장을 읽으면 예수님은 바로 그 살아 계신 구속자이십니다. 욥이 먼 훗날을 바라보며 고백했던 그분이, 우리 가운데 오셔서 죄와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복음은 무너진 삶 위에 다시 선포되는 구원의 확신입니다.
욥기 20장은 소발이 욥의 고백을 반박하며, 악인의 즐거움은 잠깐이고 결국 멸망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욥이 고난을 받는 이유를 여전히 죄에서 찾습니다. 그의 말은 논리적이지만, 한 사람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리딩지저스 관점에서 욥기 20장을 읽으면 예수님은 논리가 아닌 눈물로 죄인을 품으셨습니다. 죄는 반드시 심판받지만, 복음은 심판보다 먼저 찾아오신 은혜입니다. 고난 앞에서 정죄가 아니라, 눈물로 동행하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욥기 21장은 욥이 오히려 악인이 형통한 세상을 지적하며, 친구들의 논리를 반박합니다. 악인은 잘 살고, 자녀들은 형통한 삶을 누리며 죽을 때도 평안하다고 말합니다. 세상의 불공평함을 솔직히 받아들이는 욥의 시선은 현실적입니다.
리딩지저스 관점에서 욥기 21장을 읽으면 예수님도 이 불공평한 세상에서 외면당하고 버림받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끝에서 공의를 회복하신 분이십니다. 복음은 지금은 불공평해 보여도, 결국 모든 것을 바로잡으시는 하나님의 이야기입니다.
욥과 친구들의 대화는 점점 첨예해지지만,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목소리는 욥에게서 흘러나옵니다. 고난은 단순한 교훈이나 대가가 아닙니다. 고난은 하나님과 더 깊이 만나는 길목입니다.
리딩지저스의 관점에서 읽으면 예수님은 고난의 길을 직접 걸어가신 분입니다. 우리처럼 질문하셨고, 우리보다 더 깊은 절망을 겪으셨지만, 그분은 끝까지 하나님을 붙드셨습니다. 복음은 고난의 의미를 해석해주는 사전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통로입니다. 주여, 고난 중에도 내 영혼의 구속자를 보게 하소서. 판단보다 사랑, 정죄보다 동행을 선택하게 하소서. 오늘도 당신의 위로를 누군가에게 전하는 통로로 살아가시는 하나님의 백성들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