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신 하나님을 알아야 작은 나를 안다
11월 12일 큐티 정지운 목사
욥기 9장 1-16절
최근에 아들이 ‘넘사벽’이라는 말을 쓰는 것을 보았습니다. 넘사벽이란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을 의미합니다. 비교 대상이 불가한 벽을 만났을 때 우리는 넘사벽이라고 말을 합니다. 욥은 친구들과는 논쟁을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철저히 넘사벽이신 하나님께 솔직히 고백을 합니다. 욥은 친구들이 고난의 문제가 욥의 죄 때문이라고 할 때는 그들의 이야기에 대해서 대응을 했지만,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는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 피조물인지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는 욥의 모습을 만나게 됩니다. 욥은 넘사벽의 하나님을 분명히 인식하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욥이 크신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을 몰랐던 것이 아닙니다. 욥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있는 것도 없게 하시고 없는 것도 있게 하시는 하나님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특별히 욥은 16절에 가령 내가 그를 부르므로 그가 내게 대답하셨을지라도 내 음성을 들으셨다고는 내가 믿지 아니하리라 라고 말을 합니다. 그렇다면 욥은 불신자인가? 아닙니다. 욥은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하나님 앞에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생을 살아가는 피조물인 인간과 넘사벽 하나님과의 차입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크신 하나님을 알아야 작은 나를 안다는 고백을 하게 됩니다. 우리의 자아가 커지면 커질수록 내가 믿는 하나님은 작아집니다. 그러나 내 자아가 작아질수록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축소키려고 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가 축소시킨다고 작아지는 분이 아니십니다. 도리어 우리의 믿음이 작아지는 것입니다.
이민자로 살아가는 것은 이 땅에서 순례자로 살며 크신 하나님을 경험하면서 주님과 동행하는 시간입니다.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와는 비교할 수 없는 미국 땅을 밟아보지 않고는 우리 이성의 한계는 크신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하물며 온 우주를 만드신 하나님을 우리는 끊임없이 묵상하면 작은 나를 발견해야 합니다. 내가 작아지지 않고는 하나님의 크심을 알 수 없습니다. 바라기는 오늘 하루 넘사벽의 하나님을 깊이 묵상을 하면서 욥처럼 크신 하나님 앞에서 연약한 피조물임을 철저히 고백하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