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는 말이야

11월 11일 큐티 정지운 목사

욥기 8장 1-22절

몇 해 전부터 많이 사용되는 표현 가운데 기성세대가 자주 쓰는 ‘나 때는 말이야’를 코믹하게 풍자한 ‘라떼는 말이야’라는 말이 있습니다. 꼰대, 즉 기성 세대를 비꼬는 말로 심지어 누리꾼들은 ‘Latte is horse’라고 바꿔 말하며 라떼 커피 사진과 초원을 달리는 말의 사진을 함께 등장시키기도 합니다.

저는 라떼는 말이야는 기성세대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세대와 세대 사이에서 계속해서 양상은 다르지만 바뀔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왜 기성세대는 라떼는 말이야를 이야기할까요? 자신들이 살아온 시대와 살아온 노력이 새로운 세대들보다 더 수고했다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세대들에게 기성세대의 공식을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습니다.

오늘 본문은 빌닷의 라떼는 말이야를 보게 됩니다. 엘리바스와 빌닷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욥에게 일어난 고난의 이유가 욥의 죄 때문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따라서 빌닷은 욥에게 과거의 옛 시대의 조상들이 터득한 것을 배워서 적용하라고 권면합니다. 빌닷의 이런 말이 일면 모두 틀린 것은 아닙니다. 신앙 선배들의 지혜를 귀담아들을 필요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욥에게 딱 들어맞는 솔루션이 될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최근에 더센트 프리칭 컨퍼런스에서 이찬수 목사님께서는 목회를 생물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에 촉각을 세우고 반응하지 않으면 대응에 차질을 겪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내가 생각하는 것이 내일은 바뀔 수도 있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빌닷이 욥에게 이야기하는 것처럼 모든 사람들에게 솔루션을 제공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라떼는 말이야가 아니라 욥의 이야기를 경청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라떼는 말이야를 하고 있는 빌닷의 모습이 우리에게는 없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바라기는 오늘 하루 욥의 상황을 섣부르게 분석하고 솔루션을 제공하지 않고 깊이 공감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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