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석의 하나님
11월 8일 큐티 정지운 목사
욥기 5장 1-27절
C. S. 루이스의 책 가운데 ‘피고석의 하나님’이라는 에세이집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루이스는 고대인은 피고인이 재판장에게 가듯이 하나님께 나아갔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현대인의 경우엔 그 역할이 뒤바뀌었다는 겁니다. 인간이 재판장이고 하나님은 피고석에 계십니다. 이러한 루이스의 통찰은 오늘날의 상황까지도 맥을 같이 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피고석에 앉아 있는 욥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엘리바스는 재판장이 되어서 판사가 주문을 외우듯이 욥에게 판결을 내립니다. 8절에 보면 나라면 하나님을 찾겠고 내 일을 하나님께 의탁하리라 엘리바스의 말은 신학적으로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말이 욥에게 부합하는 말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특별히 엘리바스는 욥을 미련하고 어리석은 사람으로 몰아붙였습니다. 엘리바스의 신학은 깔끔했는지는 몰라도 욥을 향한 인간에 대한 이해는 심각할 정도였습니다. 존 칼빈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우리 인간을 아는 지식과 연결되어 있다고 했는데, 엘리바스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엘리바스의 모습이 오늘날 조롱받고 비판받는 무례한 성도들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치 믿지 않는 사람들의 고난의 현장에 찾아가서 위로하는 척 하고 예수 믿지 않아서 징계 받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누가 하나님을 믿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중요한 것은 ‘나 라면’을 지워야 합니다. 위로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훈수 두는 것이 아니라 고통의 자리에 함께 있어 주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언젠가 예수 믿지 않은 순원을 위해서 6개월간 헬스장을 같이 다닌 순장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신앙을 강요하지 않았고 같이 헬스장에서 그분의 이야기를 들어주었습니다. 마음이 열려서 그분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고, 자신의 문제를 기도제목 삼아서 함께 그 순장님과 순모임으로부터 시작해서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엘리바스처럼 재판장의 자리에 앉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예수님께서는 죄인된 우리를 위해서, 죄 없으신 의로운 재판장 예수님께서 피고석에 계셨습니다. 바라기는 오늘 우리의 삶이 엘리바스처럼 재판장이 되어서 누군가를 정죄하고 누군가의 고통과 아픔을 분석하는 사람이 아니라 고통의 자리에 함께 동행해주는 작은 예수로 살아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