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이 되려는 것이 교만이다

11월 7일 큐티 정지운 목사

욥기 4장 1-21절

교만이라는 것을 정의하는 것은 여간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교만한 사람들에게 교만한다고 말을 하면 화를 내면서 자신은 절대로 교만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겸손한 사람에게 당신이 교만하다고 말을 하면 네 당신의 말이 맞습니다. 저의 교만을 용서해달라고 합니다.

욥의 스토리를 묵상하며 욥의 친구들의 말을 분석하다 보면 우리 인간의 교만을 보게 됩니다. 먼저 엘리바스의 말을 세밀하게 관찰해보면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이 자신이 기준이라도 된 것처럼 욥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한마디로 욥의 고난의 원인은 욥 자신의 죄 때문일 수 있다는 것을 넌지시 이야기 합니다. 결국 욥의 고난의 원인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것일 수 있음을 분석하고 결론을 내립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엘리바스의 모습이 우리의 내면과 너무나 닮아 있음을 보게 됩니다. 우리 인간은 마치 신이라도 된 것처럼 기준이 되고 싶어 합니다. 어떤 사람에 대해서 쉽게 단정하고 분석하고 결론까지 내려버립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이야말로 죄로부터 기인한 모습입니다. 엘리바스의 분석은 엘리바스의 생각상자에 조립하고 분해하기도 하는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 자신만의 하나님 상을 가지고 욥의 상황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성경적인 인간에 대한 이해와 다른 입장으로 마치 그것이 성경적인 입장인 것처럼 엘리바스는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기준이 되려는 것이 교만이라는 것을 엘리바스의 모습을 통해서 보게 됩니다. 우리는 너무나 섣부르게 어떤 사람의 상황을 분석하고 판단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분석과 판단은 마치 하나님의 자리에서 마치 자신이 기준이라도 된 것처럼 결론을 내리는 교만으로부터 기인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고난 받은 친구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분석과 판단이 아니라 고통의 자리에 함께 있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욥을 인정해주신 것처럼 존재 자체를 인정해주는 것으로 충분한 위로가 될 것입니다. 부디 오늘 하루 고통을 겪고 있는 누군가에게 훈수 두는 자가 아니라 고통의 자리에 함께 있어주는 위로자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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