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10월 26일 큐티 정지운 목사
열왕기상 21장 1-10절
‘정의란 무엇인가’로 유명한 마이클 샌델의 책 중에 ‘What Money Can’t Buy’라는 책이 있습니다. 우리말로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라는 제목으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이 책은 무엇이 가치를 결정하는지 면밀히 살펴보면서 시장의 역할과 시장의 도덕적 한계에 대해서 논의하는 책인데요.
저는 특별히 이 책에서 물질만능주의와 거래만능주의 시대의 폐해에 대해서 크게 두 가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는 불평등입니다. 돈으로 살 수 있는 대상이 많아질수록 우리가 부유한지 가난한지가 중요해진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부패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 속에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 가치를 매기게 됩니다.
예를 들면 돈을 주고 아이들에게 독서를 하게 할 수는 있으나 독서의 내면적 가치가 만족의 원천이 아니라 돈을 얻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저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의 가치를 잃어버리지 않는 한에서 시장경제의 자율성도 보장이 된다고 서술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사려고 하는 아합의 모습이 나옵니다. 아합은 자신의 별장 왕궁 곁에 가까이에 있던 나봇의 포도원을 갖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합은 나봇에게 더 좋은 포도원 혹은 돈으로 그것을 사겠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보면 아합의 통 큰 제안은 나봇의 인생에 한 번 점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봇은 거절을 합니다. 왜 나봇이 제안을 거절했을까요?
레위기 25장에 보면 어느 누구도 하나님께서 주신 땅 유업을 팔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나봇은 내 조상의 유산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실지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나봇의 포도원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아합의 제안은 성사되지 않았습니다. 아합은 마치 원하는 물건을 당장 사지 못해서 안달이 난 성인아이처럼 드러누워 버렸습니다.
이러한 아합의 모습을 본 이세벨은 아합에게 나봇의 포도원을 선물하기 위해서 나봇 죽이기 프로젝트를 설계합니다. 아합의 이름으로 편지들을 쓰고 그 인을 치고 봉해서 그의 성읍에서 나봇과 함께 사는 장로와 귀족들에게 보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사문서 위조에 해당하며 왕이라는 권력 아래 있는 또 다른 권력자들을 힘으로 포섭을 합니다. 그리고 불량자 두 사람을 시켜서 나봇을 왕을 저주한 죄인으로 낙인합니다. 이세벨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갖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상숭배자 아합과 이세벨, 하나님 앞에 예배자로 살아가는 나봇을 보게 됩니다. 왜 이처럼 대조되는 인생을 살아갈까요? 우상숭배자 아합과 이세벨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다른 것들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그것들을 가치있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나봇은 예배자로서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없었습니다. 이처럼 우상숭배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살아가는 것보다 다른 것들이 우리의 마음에 중요해질 때 문제가 생깁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지 않고 모든 것이 하나님이 허락하시고 주신 것들인데 그것들을 욕망함으로 예배자가 아닌 우상숭배자로 전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디 오늘 하루 우리의 마음이 아합과 이세벨처럼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착각하고 살아가고 있지 않은지 우리의 사고방식이 아합과 이세벨의 모습과 맞닿아 있는 부분은 없는지 내면을 점검하는 하루가 되길 원합니다. 바라기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내 조상의 유산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실지로다 라고 고백했던 나봇처럼 그 어떤 것으로도 바꿀 수 없고 빼앗을 수 없는 가치를 붙들고 하나님만을 예배하는 예배자로 하루의 삶을 살아가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