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주권에 월권하지 말라

10월 25일 큐티 정지운 목사

열왕기상 20장 35-43절

2019년에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빈지하에 사는 기우는 친구의 소개로 부잣집 박 사장 집 고액 과외 선생님이 됩니다. 다음은 기우의 여동생이 그 집의 미술 선생님으로, 그다음은 아버지와 엄마가 각각 운전기사와 가사도우미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박 사장의 가족이 여행을 떠나게 되었는데, 그날 밤 기우의 가족은 박 사장 집에서 주인행세를 합니다. 저는 이 영화에서 이 장면이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왜 그럴까요? 박사장의 집에서 주인행세 하는 기우 가족들의 모습이 타락한 우리 인간의 자화상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월권이란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자신의 권한 밖의 일에 관여하며 남의 권한까지 침범하는 일을 의미합니다. 우리 인간의 타락은 에덴 동산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기준을 벗어나서 마치 에덴동산의 주인행세를 하는 것이 바로 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아람 왕 벤하닷과 조약을 맺은 아합에게 하나님께서는 마치 다윗에게 나단 선지자를 보내셔서 책망하시는 것처럼 무대를 세팅하십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선지자의 무리 중 한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그의 친구에게 이르되 너는 나를 치라 하는데 한 사람은 치기 싫어서 치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않았다는 이유로 죽게 됩니다. 반대로 또 다른 사람은 치라고 하니까 상하도록 쳤습니다. 그런데 그는 말씀을 순종했다는 이유로 도리어 살게 됩니다. 이러한 모습은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않고 불순종한 아합의 모습을 비춰주는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선지자는 아합에게 변장을 하고 갑니다. 자기 이야기인 듯 꾸며서 아합에게 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포로를 감시하다가 놓쳤고 그 일로 죽든지 은 한 달란트를 물어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아합에게 묻습니다. 이 때 아합은 40절에 네가 스스로 결정하였으니 그대로 당하여야 하리라! 아합은 자신의 입술로 아합 자신을 향한 판결문을 읽는 듯 합니다. 그제서야 변장을 한 선지자는 수건을 벗고 그 사람이 바로 아합이며 벤하닷을 제거하지 않은 죄에 대해서 고발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아합은 근심하고 답답하여 그의 왕궁으로 돌아갔습니다. 다윗처럼 아합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근심만 했을 뿐입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스스로 결정한 죄에 대해서 묵상하게 됩니다. 마치 기생충의 박 사장 집에서 주인행세 하는 기우의 가족들처럼 아합은 전쟁에서 승리하자 주인행세를 한 것입니다. 스스로 결정한 죄를 저질렀고 벤하닷을 제거하지 않고 조약을 맺고 살려주었습니다. 이처럼 우리 인간은 타락한 죄성으로 스스로 결정하는 죄를 범할 때가 참 많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월권하며 우리 삶의 수많은 선택과 결정 속에서 아합처럼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나의 죄를 저격하는 말씀의 화살을 피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번주 50주년 기념 부흥회가 있습니다. 이찬수 목사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아합처럼 근심만 하고 답답해 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행세 하며 스스로 결정한 죄에 대해서 회개하며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나아가길 원합니다. 강단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이 누군가를 향한 말씀이 아니라 나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서 통회하고 자복하며 하나님의 더 큰 일을 기대하는 전무후무한 부흥회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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