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땅 이스라엘을 순례하면서 깊은 감동으로 다가온 나무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올리브 나무입니다. 올리브 나무가 있는 곳의 공통점은 물이 잘 보이지 않는 척박한 땅에서 깊이 뿌리를 내리고 살아간다는 점입니다. 비옥한 토양보다 메마른 땅이 오히려 나무를 강하게 만들고, 거기서 자란 열매는 더욱 깊은 맛을 품습니다. 수백 년이 된 나무도 있고 천년을 넘어 예수님 시대의 올리브 나무라고 알려진 것도 있습니다. 바람과 가뭄 그리고 혹독한 계절을 수없이 견뎌낸 시간 속에서 나무는 더 단단해지고, 그 속살은 더 고요하게 영글어 갑니다. 옥토에서 피어나는 꽃도 화려하지만, 광야에서 피어나는 들풀이 더 깊은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진주는 조개 속에서 고통을 덮으려 층을 켜켜이 쌓으며 자랍니다. 대장장이의 금속은 불 속에서 수없이 달궈지고 망치질을 당하며 제 모양을 갖춥니다. 그 과정이 고되고 거칠수록 진주의 빛은 깊어지고 금속은 단단해집니다. 사람도 마찬가집니다. 누구나 부서지고 다시 맞춰지는 시간을 살아갑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해도 그 안에 수많은 실패와 두려움, 기다림과 인고의 세월이 녹아 있습니다. 풍상을 이겨낸 구부러진 소나무가 품격을 더하듯이, 세상에 상처 없이 단단함과 견고함을 지닌 사람은 없습니다. 그 과정에서 흔들리기도 하고 무너질 듯 휘청거릴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시간이 모여 한 사람의 얼굴이 만들어집니다. 지난한 인고의 삶을 살아온 사람이라 해도 작은 바람 앞에 흔들리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흔들림조차 한 사람의 성품을 조각하는 여정이 되고, 한 사람의 인생을 빚어가는 자양분이 됩니다. 부서지고 깎이고 다시 일어서는 과정을 통해 세상은 오늘까지 존재해 왔고, 마침내 우리는 제각기 오늘의 얼굴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오늘 햇살 앞에 그림자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라도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인생의 무거운 순간을 만날 때마다 떠오르는 장면이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지만 갈릴리 해변으로 다시 물고기를 잡으러 가는 베드로와 제자들입니다. 십자가를 지시는 예수님을 버려두고 도망간 제자들, 사명은 다 잊어버리고 다시 물고기 잡으러 바다로 뛰어든 제자들, 이런 제자들을 다시 찾아오신 주님의 모습입니다. 밤새도록 그물을 내렸어도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했던 제자들이지만, 예수님의 한 마디에 그물은 찢어질 정도로 거대한 물고기로 가득했습니다. 예수님 앞에 머리를 숙인 베드로에게 갈릴리 새벽바람을 타고 주님의 잔잔한 음성이 들려옵니다. “베드로야 와서 밥 먹자.” 낙심에 쓰러진 베드로를 살려낸 하늘의 음성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배신한 한 영혼을 이렇게 사랑하신다면 우리가 품지 못할 사람은 없습니다. 신앙의 여정에 모든 풍상을 겪은 한 어부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위대한 사도로 거듭났습니다. 무너짐과 연약함 투성이로 살아간다 해도 우리는 여전히 주님의 눈에는 가장 소중한 보물입니다.
여러분의 목사 류응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