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딩지저스 1주차 1일
창세기 1장은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시는 전능하신 창조주로서, 무질서한 혼돈 속에서 질서와 생명을 만드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세상과 인류를 무심한 창조가 아니라 목적과 사랑으로 지으셨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십니다. 이는 말씀의 능력을 보여주며, 하나님께서 혼돈과 공허를 질서와 생명으로 변혁하시는 분이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또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습니다(창 1:27). 이는 인간의 존엄성과 소명, 창조질서 안에서의 책임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형상을 통해 인간에게 주어진 관계적, 창조적, 도덕적 소명을 강조합니다. 이처럼 창조는 그 자체로 ‘샬롬(완전한 조화)’을 보여주며, 이는 인간의 죄로 깨졌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회복될 샬롬의 비전을 지시합니다. 예수는 "새 창조의 시작"으로 이 땅에 오셔서, 타락으로 손상된 창조질서를 회복하십니다.
리딩지저스 관점에서 창세기 1장을 읽으면 요한복음 1장 1-3절은 예수님이 "태초에 계신 말씀"이셨음을 선포합니다. 예수님은 창조의 도구가 아니라 창조의 중심이 되신 분입니다. 창세기 1장의 말씀 창조는 신약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오셔서 새 창조의 시작을 이루심을 상징합니다.창세기 1장 첫 번째 창조 행위는 "빛이 있으라"는 명령입니다(창 1:3). 이는 요한복음 8:12에서 "나는 세상의 빛이라" 하신 예수님의 선포와 연결됩니다. 죄의 어둠을 뚫고 오신 예수님은 창조 첫날의 빛처럼, 인류에게 새 생명의 빛을 주십니다.
또한, 예수님은 타락으로 인해 손상된 인간의 형상을 회복시키기 위해 오셨습니다. 골로새서 1:15은 예수님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창세기 1장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은 결국 예수님을 통해 완성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예수 안에서 인간은 본래의 존엄을 되찾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됩니다.
창세기 2장은 창조의 디테일을 통해 인간의 관계적 본질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생기를 불어넣으셨습니다(창 2:7). 이는 인간이 단순한 창조물이 아닌, 하나님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존재임을 보여줍니다. 에덴은 풍성함과 질서,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입니다. 인간은 그곳에서 창조를 돌보고 확장해야 할 사명을 받았습니다. "둘이 한 몸을 이룬다"(창 2:24)는 표현은 인간 관계의 핵심으로, 부부 관계뿐 아니라 복음적 사랑의 본질을 상징합니다. 이처럼 창세기 2장은 참된 안식과 소명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단순한 노동이나 존재가 아니라, "안식 속의 사명"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1:28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며 참된 안식을 약속하십니다. 에덴의 안식은 예수님 안에서 완전해집니다.
리딩지저스 관점에서 창세기 2장을 읽으면 예수님은 "마지막 아담"으로 불리며(고전 15:45), 첫 아담이 실패했던 완전한 순종을 이루셨습니다. 첫 아담은 하나님의 생명과 은혜를 누리는 위치에 있었지만 불순종으로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광야에서 시험받으시며 완전한 순종으로 하나님의 사명을 이루셨습니다. 에덴의 나무(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하나님의 권위를 상징합니다. 인간은 이를 통해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이를 거부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나무"를 통해 순종하심으로, 잃어버린 에덴을 회복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연합은 단순히 부부 관계가 아니라, 예수님과 교회의 연합을 예표합니다(엡 5:31-32). 창세기 2장의 결혼 이야기는 예수님의 사랑으로 완성됩니다.
창세기 3장은 뱀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게 만들며(창 3:1),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교만으로 금지된 열매를 먹습니다. 이는 하나님과 인간의 신뢰 관계를 깨뜨린 사건입니다. 타락 이후 인간은 수치와 두려움 속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게 됩니다. 이는 모든 인간 관계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파괴되었음을 상징합니다. 비록 심판이 선포되었지만(창 3:15), 여자의 후손을 통해 뱀의 머리가 상하게 될 것이라는 ‘원복음’이 선언됩니다. 이것이 복음의 씨앗이며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질 구속의 시작입니다. 인류는 타락했지만 하나님은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가죽옷으로 인간의 수치를 덮으신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님의 의로 옷 입는 구원의 예표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인간의 실패에 대한 해결책을 준비하셨습니다.
리딩지저스 관점에서 창세기 3장을 읽으면 창세기 3:15은 "원복음(Protoevangelium)"으로 불리며, 여자의 후손(메시아)이 뱀(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십자가 승리를 예표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사탄을 물리치시고 부활하심으로 궁극적인 승리를 이루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입히신 것은 죄를 덮기 위해 희생이 필요함을 상징합니다. 이는 예수님이 의의 옷으로 우리의 수치를 덮으시는 사역을 보여줍니다(사 61:10). 에덴에서 추방된 인간은 스스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스스로 십자가에서 길을 여심으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새롭고 산 길을 만드셨습니다(히 10:19-20)
창세기 4장은 가인이 아벨을 질투하여 살해함으로, 인간 사회에 죄의 확산을 보여줍니다(창 4:8). 이 사건은 단순한 살인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반역과 형제 관계의 파괴를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죄가 문 앞에 도사리고 있지만, 죄를 다스리라고 경고하십니다(창 4:7). 그러나 가인은 이를 거부했습니다. 비록 가인은 심판을 받았으나, 하나님은 보호의 표를 주어 가인이 죽임을 당하지 않도록 하십니다(창 4:15). 이는 하나님의 정의와 동시에 은혜를 보여줍니다. 가인의 죄는 그의 피로 인해 울부짖는 아벨의 피를 남깁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12:24은 예수님의 피가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소리를 낸다고 선언합니다. 아벨의 피는 정의를 외쳤지만, 예수님의 피는 용서와 화해를 외칩니다.
리딩지저스 관점에서 창세기 4장을 읽으면 예수님은 참된 아벨로, 의로운 분이셨지만 불의한 세상에 의해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죽음은 저주가 아닌 생명의 길을 여셨습니다. 가인은 보호의 표를 받았지만, 진정한 보호는 십자가의 표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십자가는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를 상징합니다. 창세기 4장의 마지막 부분에 나타나는 셋의 후손은 새로운 소망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통해 인류는 새로운 "영적 후손"으로 태어납니다.
리딩지저스 1주차 1일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창조는 목적과 사랑으로 이루어졌으며, 예수님을 통해 회복될 샬롬의 비전을 바라보게 됩니다. 타락한 인간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참된 안식과 관계 회복으로 나아가시는 하나님의 백성들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