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딩지저스 33주차 1일

마태복음 19장은 ‘관계와 재물 앞에서 드러나는 제자도의 진정성’을 다룹니다. 예수님은 이혼 논쟁에서 창세기의 창조 질서(한 몸, 하나님이 짝지으신 언약)를 다시 세우시며, 어린아이들을 품으시어 하나님 나라의 문턱이 낮아졌음을 보여 주십니다. 부자 청년에게는 계명의 틀을 넘어 “와서 나를 따르라”는 인격적 부르심을 주시되, 재물이 가로막는 심연을 드러내십니다. 그러나 사람으로는 불가능한 구원이 하나님으로는 가능하다고 선포하시고, 모든 것을 버린 자들에게 백 배와 영생의 약속을 주십니다.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역전의 원리가 결론처럼 울립니다.

리딩지저스의 관점으로 마태복음 19장을 읽으면 예수님은 “창조의 언약을 회복하시고 재물의 굴레에서 자유케 하시는 주”이십니다. 그는 관계를 복음으로 새롭게 하시고, 소유 대신 따름으로 사는 길을 여십니다.

마태복음 20장은 ‘은혜의 경제와 섬김의 왕도’를 펼칩니다. 포도원 품꾼의 비유에서 예수님은 일한 시간의 논리가 아니라 주인의 선하신 자유-은혜의 질서-가 하나님 나라의 기준임을 가르치십니다. 세 번째 수난 예고 후, 야고보·요한의 자리 욕구를 “섬김”으로 거꾸로 세우시며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섬기려 하고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자기 목숨을 주려 함이라”는 복음의 중심을 밝히십니다. 여리고 가까이에서 소경 둘을 고치실 때, 군중의 제지보다 더 큰 긍휼로 다가가 눈을 뜨게 하십니다.

리딩지저스의 관점으로 마태복음 20장을 읽으면 예수님은 “은혜로 계산을 새로 쓰시고, 십자가로 왕권을 증명하시는 종의 왕”이십니다. 그는 특권을 자리에서 사명으로, 욕망을 섬김으로 전환시킵니다.

마태복음 21장은 ‘왕의 입성, 성전의 심판, 권위의 도전’입니다. 예수님은 스가랴의 예언대로 겸손한 왕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고, 성전을 정화하여 “기도의 집”을 회복하십니다. 다음 날 잎만 무성한 무화과를 저주하시며 열매 없는 경건을 경고하시고, 권위를 따지는 지도자들에게 세 가지 비유와 논쟁으로 응답하십니다. 두 아들의 비유는 말과 행함의 간극을, 악한 농부의 비유는 아들을 배척하는 종교 권력의 폭력을 폭로합니다.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머릿돌”이 되었다는 시편의 말씀으로, 배척받은 메시아의 승리를 예고하십니다.

리딩지저스의 관점으로 마태복음 21장을 읽으면 예수님은 “겸손으로 오시되 거룩으로 심판하시는 성전의 주, 머릿돌”이십니다. 그는 잎사귀 신앙을 넘어 열매를 요구하시고, 버림 받은 돌로서 구원의 기초를 놓으십니다.

마태복음 19–21장은 언약의 회복(관계·재물), 은혜의 경제(섬김·대속), 왕의 권위(입성·정화·머릿돌)를 한 흐름으로 엮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창조의 의도 속으로 다시 부르시고, 계산이 아닌 은혜로 살게 하시며, 겉모습이 아닌 열매로 응답하라 명하십니다.

바라기는 오늘 하루 우리는 관계를 언약의 시선으로 다시 세우고(용서와 신실함), 계산을 은혜의 경제로 바꾸어 섬김을 선택하며(자리보다 십자가), 열매 없음이 아니라 열매 있음으로 왕의 권위에 순종하기를 소망합니다. 바라기는 오늘 하루 임마누엘의 주님과 함께, 언약과 은혜와 거룩을 삶으로 드러내는 제자로 서시는 하나님의 백성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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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목자의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