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딩지저스 16주차 1일

욥기 1장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의인 욥이 등장합니다. 그는 자녀들을 위해 제사를 드릴 만큼 경건했지만, 하늘에서는 사탄이 그의 신앙을 시험하려 합니다. 욥은 하루아침에 자녀와 재산을 잃지만,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이도 여호와시니”라는 고백으로 입술로 범죄하지 않습니다.

리딩지저스 관점에서 욥기 1장을 읽으면, 예수님은 세상의 의문 속에서도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따르신 참 의인이십니다. 복음은 풍요로움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잃음 속의 경외’에서 진실해집니다. 신앙은 축복의 조건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잃지 않는 태도입니다.

욥기 2장은 사탄은 다시 욥을 시험합니다. 이번에는 그의 몸에 고통이 임하고, 아내는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합니다. 그러나 욥은 “복만 받고 화는 받지 않겠느냐”며 신앙을 지켜냅니다.

리딩지저스 관점에서 욥기 2장을 읽으면, 예수님은 고통 속에서도 아버지의 뜻을 따르신 분이십니다. 욥의 몸은 깨어졌지만, 믿음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내 믿음은 건강할 때만 유효한가요? 고통은 믿음을 드러내는 거울입니다.

욥기 3장은 고통의 입을 열다. 욥은 드디어 침묵을 깨고, 자신의 탄생을 저주합니다. "내가 왜 태어났는가"라는 질문은 절망의 바닥에서 울리는 인간의 외침입니다. 리딩지저스 관점에서 읽으면, 예수님도 겟세마네에서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절망의 언어조차 들으십니다. 고통 앞에서 침묵하지 마십시오. 탄식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기도의 시작입니다.

욥기 4장은 욥의 친구 엘리바스는 욥의 고통을 보며, 그것이 죄에 대한 대가라고 말합니다. 그는 인간의 행위가 하나님의 반응을 결정한다고 믿었습니다.

리딩지저스 관점에서 욥기 4장을 읽으면, 예수님은 죄 없이 고난받으신 분이십니다. 욥의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의인의 고난'이라는 복음의 퍼즐을 다시 묻게 합니다. 때론 정답 같은 말이, 고통 앞에선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친구의 아픔은 해석이 아니라 동행이 필요합니다.

욥기 5장은 엘리바스는 계속해서 욥에게 회개를 촉구하고, 하나님은 낮추셨다가 다시 높이신다고 말합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욥에게는 상처가 됩니다.

리딩지저스 관점에서 5장을 읽으면, 복음은 정죄가 아니라 공감으로 다가오신 예수님의 얼굴을 닮았습니다. 신앙은 옳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옳은 때에 사랑의 언어로 말하는 것입니다.

욥기 6장은 욥은 친구의 말에 상처받아, “내 고통을 저울에 달아보라”고 외칩니다. 고통은 설명보다 공감이 필요한 무게임을 호소합니다.

리딩지저스 관점에서 6장을 읽으면, 예수님은 우리의 고통을 ‘몸소’ 달아보신 분이십니다. 그는 우리가 짊어진 슬픔을 친히 체험하셨습니다. 고통의 무게는 저마다 다릅니다. 우리는 서로의 짐을 져주는 공동체입니까?

욥기 7장은 욥은 밤마다 잠 못 이루며, 하나님의 응답 없는 침묵에 괴로워합니다. 하나님께 묻습니다. “내가 죄라도 지었으면 어찌하여 나를 지키십니까?”

리딩지저스 관점에서 욥기 7장을 읽으면, 예수님도 십자가 위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며 하나님의 침묵을 경험하셨습니다. 그 침묵은 결코 외면이 아니라, 구원의 전환점이었습니다.하나님이 침묵하실 때, 믿음은 더 깊어집니다. 응답이 없을 때조차 하나님을 부르짖는 사람이 되십시오.

욥의 고통은 죄 때문이 아니라, 신앙의 깊이를 드러내는 무대였습니다. 리딩지저스의 눈으로 보면, 욥의 눈물과 예수님의 눈물이 교차합니다. 복음은 고통을 피해가는 길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나는 여정입니다.

고통 속에서도 주님을 신뢰하게 하소서. 설명 대신 동행을 택하게 하시고, 침묵 가운데서도 주님의 음성을 기다리는 하나님의 백성들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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